
1980년대, 한국의 암울했던 군사 정권 시기. 권력의 뒤편에서는 서로를 의심하며 생존을 도모하던 두 안기부 요원이 존재했다.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 〈헌트〉는 바로 그 시대를 배경으로, 첩보, 스릴러, 액션, 정치 드라마 요소를 모두 압축해 낸 걸작이다. 남북 간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던 혼란의 시기, 국가를 지키겠다는 사명감 아래 얽히고설킨 진실과 거짓 속에서 터지는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는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제17회 파리 한국영화제(FFCP)에서 헌트를 직접 관람한 제 남편의 솔직 후기도 말미에 덧붙였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함께 읽어주시기 바란다.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헌트 (HUNT / 헌트 / Heonteu)
- 장르: 드라마, 스릴러, 첩보, 액션
- 감독: 이정재
- 각본: 이정재, 조승희
- 제작: 이정재
- 상영시간: 125분
- 개봉일: 2022년 8월 10일 (한국) / 2023년 5월 3일 (프랑스)
-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The Jokers
- 음악 (OST):
– 깊이 있고 긴장감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중심의 사운드트랙.
– 메인 테마는 80년대 시대감과 인간 심리의 내면을 절묘히 결합함.
헌트 줄거리
1980년,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암살되고, 전두환 중심의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국가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북측은 이 틈을 타 대규모 첩보 작전을 개시하고, 남한 내 고위 간첩이 숨어 있다는 첩보가 떨어진다.
안기부(현 국정원) 소속의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는 각각 해외파트와 국내파트를 이끄는 베테랑 간부. 하지만 수상한 정황과 과거의 비밀들이 밝혀지며, 서로가 간첩이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한편, 이중 삼중의 배신과 고발, 그리고 과거 광주의 피비린내 나는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며 진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명분의 전쟁 속에서,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진실인가.
등장인물과 캐스팅
- 박평호 – 이정재
해외 파트를 맡고 있는 안기부 간부. 냉철하면서도 의뭉스러운 성격. 과거의 진실을 품고 있으며, 절대적인 충성심보다는 나라와 사람을 보는 시선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 - 김정도 – 정우성
국내 파트 책임자. 정의감이 강하며, 안기부 내부의 부패와 이념적 위선을 냉정하게 꿰뚫는다. 그러나 그 역시 비밀을 안고 있는 인물로, 평호와의 갈등은 극을 밀도 있게 만든다. - 방주경 – 전혜진
고위직 간부. 남성 중심 조직 내에서 유일하게 냉철하고 강단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인물. - 장철성 – 허성태
직선적이고 과격한 요원. 영화의 거친 전개에 날것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 조유정 – 고윤정
학생운동과 얽힌 비밀을 품은 인물.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그 외: 김종수, 정만식, 임형국, 정경순, 정재성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조연들이 총출동해 몰입감을 더한다.
영화 관람 포인트
- 정우성과 이정재, 24년 만의 재회
〈태양은 없다〉 이후 처음으로 한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최고의 브로맨스’를 넘은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밀도 높은 연기 대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80년대 한국 정치사의 생생한 재현
단순한 액션 첩보 영화가 아니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정보기관의 폭력, 체제 이데올로기의 무게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짜 어른 영화’이다. - 빠른 전개, 교차 편집, 반전 구조
초반부터 몰아치는 정보량과 시간 점프, 인물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2회 차 관람이 권장될 정도로 촘촘히 설계된 각본이다. - 국산 스파이물의 새로운 지평
기존 한국형 첩보물과는 달리, 감정과 진실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는다. 윤리적 회색지대와 허위의식,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 인상적이다. - 촬영 및 미술의 완성도
아날로그적인 질감, 어두운 조명과 대비가 강조된 촬영 기법은 시대적 배경과 감정선을 잘 조율한다. 실제 안기부 내부, 서울 도심 등을 재현한 세트도 흠잡을 데 없다.
수상 내역과 평가
-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등 국내 3대 시상식 기술상 수상
- 이정재, 감독 데뷔작으로 다수의 신인 감독상 수상
- 정우성, 전혜진 등 연기상 수상 다수
-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 상영 후 7분간 기립박수
- 런던, 하와이, 카나리아제도 등 국제 영화제 수상 및 초청
언론 평론가들은 〈헌트〉를 “첩보 액션에 정치 철학을 더한 드문 작품”이라며 극찬. “감독으로서의 이정재는 거칠지만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주를 이룸.
스테판의 솔직 후기
나는 이 영화를 파리에서 열린 제17회 한국영화제(FFCP)에서 프리미어로 처음 보게 되었다. 〈헌트〉는 스파이 영화로서는 정말 예상 밖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액션도 많고, 제작 규모도 크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최근 헐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복잡한 시나리오였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강하게 다가왔다.
감독으로서 이정재의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성인 관객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순화시키거나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참사가 있었는지에 대한 정치적 배경 지식이나 동아시아의 지정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관객들은 영화의 많은 부분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문제일 뿐이다 😉
이 영화는 선악 구도를 단순화하지도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결말은 관객 개개인이 각자 해석할 수 있도록 열린 여지를 남긴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주에 〈블랙 아담〉과 〈헌트〉를 연달아 봤는데,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렇게 밀도 있고 깊이 있는 영화를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프랑스에서 정식 개봉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원문:
Découvert en Avant-Première lors de la 17ème édition du Festival du Film Coréen à Paris (FFCP pour les intimes), « Hunt » est une très bonne surprise pour un film d’espionnage. Il y a beaucoup d’action et de moyens mais surtout, si on compare aux films américains actuels, un scénario XXL plus que touffu qui n’hésite pas à dénoncer la situation politique de l’époque en Corée du Sud. Pour un premier film, celui de Lee Jung-Jae a du coffre! Un film adulte : pas édulcoré et pas explicatif – certains spectateurs sans culture politique du chemin ayant mené à la démocratie coréenne et des massacres qui l’ont précédée, ni culture de la géopolitique locale n’ont pas tout compris, mais c’est leur problème 😉-, sans manichéisme et happy-ending (au contraire, une fin qui laisse libre cours à l’imagination de chacun). En une semaine, j’ai vu « Black Adam » et « Hunt » et, croyez-moi, cela me change ! Vivement que le film sorte officiellement en France pour qu’un plus grand nombre de spectateurs puisse en profiter.
헌트 마무리
〈헌트〉는 단순한 스파이 액션이 아니다. 정치, 역사, 인간성, 그리고 ‘믿음’이라는 테마를 조밀하게 짜낸 강도 높은 영화다. 이정재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며, 한국 현대사라는 깊은 바다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총알보다 무서운 건, 진실이다.”